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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의 대리 희생자가 된 한반도
미·중의 대리 희생자가 된 한반도
  • 김준형 l 한동대 국제정치학 교수, 전 국립외교원장
  • 승인 2023.11.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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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외교 실패와 대안

격변의 세계질서와 동북아, 그리고 한반도

오늘날 국제질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탈냉전 체제의 협력적이고 통합적인 글로벌 거버넌스가 무너지는 한편, 배타적 민족주의와 지정학적 진영대결 구조가 급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초강대국들의 세력 변동으로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와 더불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탈냉전 이후 한계 속에서도 어느 정도 작동했던 협력안보 또는 공동안보는 무력화하고, 지정학의 도래와 각자도생의 파편화가 거세게 휘몰아쳤다.

그러나 현 국제질서가 신냉전인가에 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이 대중봉쇄를 위해 노골적으로 가치와 이념에 의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진영을 나누고 있으나, 그것만으로 신냉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섣불리 신냉전으로 규정하면 과거처럼 하나의 진영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미국의 주도로 추진되는 글로벌 진영화의 이면에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서로 다른 실익 추구가 작동함으로써 진영의 경계가 모호해질 뿐만 아니라,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로만 간다는 진단도 섣부른 예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연대하고, 북한 역시 대중 및 대러 접근을 서두름으로써 미국을 상대로 협력을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미·중 이외의 다극질서를 촉진하는 신호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경제적으로도 브릭스(BRICS)의 급부상이 기존 세계 경제의 지배력을 가진 G7을 맹추격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역전도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런 현상들은 과거 미국과 소련이 세계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양분하고, 각 진영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 혼란스럽고 위험한 다극화와 파편화

그렇다고 이러한 파편화와 다극화 현상이 신냉전보다 바람직하다거나, 또는 위기가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한편에서는 신냉전의 담론에 올라탄 미·중 대결구조가 펼쳐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다극의 행위자들이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의 국가 이기주의가 판을 칠 때 세계는 훨씬 더 혼란스럽고 위험해질 수 있다. 한마디로 기존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대체 시스템이 없는 상태로 혼란과 무질서는 가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중 갈등은 승부가 나지 않은 채 최소한 30년 이상 지속될 소모전 양상이라는 점에서 진영을 선택하고 한쪽 편에 전부를 거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전략이다. 유연한 실리외교와 함께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장기적으로 양측 모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전략이 최선이다. 국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미와 친중의 분열 프레임을 이용하는 것은 망국적 행위로 자제해야 한다.

한국은 구한말과 세계 대전의 전환점에서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충돌지점으로서 겪었던 위기를 다시 맞을 수 있다. 1990년대 초 냉전체제 붕괴와 탈냉전 도래의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분단 구조를 해체하지 못했고, 2018년 큰 희망과 기대를 품게 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이후 기나긴 교착에 빠져들었다. 이후 북미 및 남북관계는 악화일로였고, 미·중 및 미·러 관계의 악화와 2022년 5월 보수 강경의 윤석열 정부의 집권이 더해지면서 지정학의 도전은 가속화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이념 외교와 한·미·일 유사 동맹의 실질화

윤석열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전임 문재인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으로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했다”라는 식으로 규정하였다. 전임 정부가 신남방정책 등을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태 전략에 동시에 참여함으로써 연결하려 하고, 한반도가 갈등의 중심 무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모호성’이라고 비판하고, 진영을 명확하게 선택했다. 대북 강경 및 친일·친미 노선을 확실히 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후 진영편향의 외교에 일관성을 보여줬고, 내용상으로도 대미 및 대일 외교가 정부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일련의 다자회담에 참석해서 한·미, 한·일, 한·미·일 정상회담을 집중적으로 가졌다. 그리고 한국의 대외전략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하고, 한-미-일 3자의 <프놈펜 공동선언>을 통해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을 견제하는 해양 세력에 본격적으로 동참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용어에 대륙이 없고, 대륙을 배제하고 봉쇄하는 해양 세력에 편입된다는 함의를 지닌다. 

미국이 지휘하는 해양 세력 편에 서고, 미·일과 함께 대륙 세력인 북·중·러를 적대적으로 포위하는 선봉에 서겠다는 전략이 우리 국익에 어떤 의미인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한-미-일을 묶어 북-중-러를 견제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이익이 될 수 있지만, 우리의 이익은 결코 아니다. 분단 및 정전 상태에 처한 우리가 한반도와 인접한 대륙 세력인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적대적인 관계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안보협력의 파트너로서 일본을 과연 신뢰할 수 있냐는 점이다. 프놈펜 선언 불과 한 달 후 이루어진 일본은 3대 안보법을 개정했다. 일본은 향후 4년간 군사비를 2배로 증액하고, 전수방위를 무력화하고 선제공격이 가능한 군사 대국화로 간다. 

윤석열 정부가 2023년 3월 6일에 <강제동원해법>을 발표했다. 미국은 환영 성명을 실시간으로 표시함으로써 모든 과정의 배후임을 자처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가치’를 내세우며 진영을 가르는 미국이, 더욱이 인권과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당 바이든 정부가 불의한 과거에 눈을 감고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부추겨,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굴욕의 <강제동원해법> 발표 10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2023년 8월 18일 한·미·일 정상이 캠프데이비드에서 마침내 안보협력의 제도화에 합의했다. 취임 이후 진영편향 일변도의 외교를 펼쳐왔고, 한미일은 이제 사실상 군사동맹의 단계로 들어섰다. 최대 승자는 미국이고, 일본도 상당한 이익을 챙겼으나, 한국은 얻은 것은 없고, 큰 손해를 입은 일방적 퍼주기였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의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를 협력적인 관계로 제도화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최고의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뉴욕타임스>는 2차대전 이후 그토록 바라면서도 이룰 수 없었던 한·일 관계가 개선되어 한미일의 3각 체제를 제도화겠다는 미국의 외교적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역시 많은 것을 얻었다.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였던 아베 정부 시절에는 한국을 제외한 미·일 동맹 또는 쿼드로 가려던 계획이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일본은 대륙 세력을 방어하는 최전선에 노출되는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이 최전선에 놓여 일본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일본은 선택이 가능해졌다. 개입하고 싶으면, 3국 안보협력을 빌미로 개입할 수 있고, 피하고 싶으면 평화헌법을 내세워 한국에 떠맡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사일 전력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일본이 정보 실시간 공유를 넘어 미사일방어체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일본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그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고 얻었다. 그러나 한국은 밑지는 장사를 톡톡히 했다. 보수진영에서는 대성공이라고 말하고, 확실한 동맹 네트워크를 갖추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반도와 주변은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 문제는 더 풀기 어렵게 되었으며, 중국과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로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그것도 한반도가 중심 무대가 되었다. 

 

한국의 대응전략은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로 가야  

세계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의 전략적 갈등이 영역적으로는 무역, 통화, 기술, 체제 우위를 놓고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지만, 물리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를 중심에 두고 집중되는 경향을 띤다. 지구적 경쟁에서는 아직 중국이 미국과 맞서는 데는 역부족일 수 있으나, 동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므로 팽팽한 세력 다툼이 벌어진다. 양국의 세력권 경계 설정이 관건인데, 한반도, 동중국해, 중국-대만 양안, 그리고 남중국해가 그런 지점들로 패권 대결의 단층선 역할을 한다. 이 지점들을 연결하면 동아시아를 위에서 아래로 가로지르는 경계선이 그어지는데, 중국은 이를 돌파하려 하고, 미국은 어떻게든 봉쇄하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힘을 통한 안보”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 벌이는 지정학적 충돌 국면과 맞물려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대외전략 자산의 확대와 다양화 및 다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진영편중의 전략은 우리의 외교 역량을 지정학과 군사동맹의 범위 안에 갇히도록 만들 우려가 있다. 윤 정부의 안보 절대주의와 동맹 신화의 맹목적 추종은 향후 5년간 우리의 역량을 지정학과 미국의 전략적 범위 안에 갇히도록 만들 것이다. 확장 억제, 전략자산 전개, 한·미 연합훈련 확대 등을 통한 외교의 안보화와 경제와 기술 등 가히 모든 영역의 군사화는 우리가 선택할 올바른 길이 결코 아니다. 최근 한국의 극우 인사들이 윤 정부의 시대적 사명을 ‘좌파 척결’로 정조준하고, 대통령도 비슷한 어조로 동조의 뜻을 자주 표한다. 이러한 흑백 논리는 대외정책에도 반영되어, 20세기 냉전 시절을 소환하고 외교적 공간을 스스로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의 대응 전략은 ‘미들 파워(middle power)’ 또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로 가야 한다. 미·중 전략경쟁의 판에서 배타적 선택의 프레임에 빠져들지 말고, 유사한 입장과 능력을 지닌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완충지대를 구축해야 한다. 지난 6월 <Foreign Policy>는 “6개의 중간 국가들이 미래의 지정학을 결정할 것이다(6 Swing States Will Decide the Future of Geopolitics)”라는 분석 기사에서 앞으로 국제정치 질서에 영향력을 발휘할 국가로 인도, 브라질, 사우디, 인도네시아, 남아공, 터키를 꼽았다.

 

전략경쟁의 대결구도에서는 남북이 대리 희생될 수도… 

가장 큰 이유는 미·중 전략경쟁의 판도에서 오히려 어느 한쪽 진영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역학 구도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중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구애하는 나라들이다. 

과거에는 국력의 크기로 미들 파워, 즉 중견국이라는 용어가 유행했지만, 이제는 양쪽 진영이 아닌 제3의 지대를 만들 수 있는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이것은 과거 냉전 시절 G77이나 비동맹 운동의 단순한 부활이 아니다. 이념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일찌감치 미국 진영에 참여함으로써 영향력을 스스로 감소해버린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과 대비된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전략을 충실히 수행하며 진영싸움의 최전방 돌격대를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는 최악의 선택으로 한국 외교의 불행한 미래를 예약하고 있다. 

냉전의 세계화 시대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한반도 분단 구조는 지정학의 도래와 함께 본격적으로 갈등이 끓어 넘쳐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미·중 관계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대리 충돌지점이 되지 않게 하려면 남북한이 긴장 수위를 낮추고 평화공존을 유지해야 한다. 남북이 법적인 통일이나 유무상통의 개방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적대적 관계 해소와 안정적 관리는 절실하게 요구된다. 한반도 긴장이 완화하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남한은 군사동맹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부담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남북한이 대결구조로 갈 경우, 한반도가 다시 대리 희생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있으므로 평화공존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발신해야 한다. 우리에게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국익을 지키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며, 안보를 확보하는 가장 값싼 수단이다.

 

 

글·김준형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국제정치학 교수. 2019년 8월부터 2년간 외교부 국립외교원장을 역임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외교안보분과위원과 청와대안보실, 외교부, 통일부 자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민간 싱크탱크인 한반도평화포럼(사) 외교연구센터장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전쟁하는 인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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