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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줌마가 더는 아줌마가 아닐 때 최고의 아줌마가 된다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줌마가 더는 아줌마가 아닐 때 최고의 아줌마가 된다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09 0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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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영화리뷰) <아줌마>

아줌마는 살짝 비하의 느낌이 들어간 호칭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여성으로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탄생했으면서 동시에 가부장제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게 아줌마이다. 아줌마가 아줌마가 아니었을 때 흔히 한 말이, 당시 아줌마인 어머니를 보며 “난 엄마처럼 살지 않아”였다. 수십 년 전 자신이 그랬듯, 자신을 보며 딸이 같은 말을 하면 아줌마는 지금 무슨 말을 할까. “너도 살아봐라. 별 수 있나”를 상상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래. 제발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대꾸하는 장면도 그려진다.

아줌마는 한국 여성의 현실을 담은 한국어인데, ‘Ajumma’로 국제적인 개념어로도 사용된다. 한국의 아줌마와 세계의 ‘Ajumma’가 같지는 않겠지만 아주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비슷한 문화권 국가의 ‘Ajumma’라면 더 동질감을 느끼지 싶다.

 

영화 <아줌마> 사진 BIFF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한·싱가포르 합작 영화 <아줌마>를 보고 나서 그 동질감의 예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아줌마>는 영화이지만, 이런 소재의 영화는 극적이기 때문에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현실이 더 극적인 영역을 그릴 때는 극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실의 단면을 잘 보여주도록 해야 한다. 케이크커팅처럼 지반과 직각으로 칼질을 해야 한다.

 

K-드라마 열성팬인 싱가포르 아줌마의 한국 여행

제목처럼 주인공이 아줌마이다. 3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장성한 아들과 함께 살며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것과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삶의 주요 의미인 림 메이화(홍휘팡)는 싱가포르의 아줌마이다.

 

영화 '아줌마' 사진 BIFF
영화 '아줌마' 사진 BIFF

영화는 림 메이화가 한국 걸그룹 노래에 맞춰 또래 친구들과 줄을 지어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림 메이화는 한국 드라마 중에선 특히 여진구가 나오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드라마 촬영 현장을 둘러보는 한국 여행을 아들과 같이 떠날 생각에 들떠 있는 림 메이화. 하지만 아들은 미국에서 일자리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며 한국여행을 취소하고 미국으로 떠나고, 림 메이화는 아들의 설명과 달리 한국여행 상품이 취소해도 환불이 안 된다는 여행사의 얘기를 듣고 과감하게 그리고 아줌마답게(?) 홀연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예정에 없던 홀로 여행에 돌입하여 사실상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림 메이화는 아들과 통화하다가 관광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낙오하고 만다. 영화는 낙오 이후 사채업자의 빚독촉에 시달리는 관광가이드 권우(강형석), 낯선 도시에서 갈 곳을 잃은 외국인 아줌마에게 호의를 베푼 아파트 경비원(정동환) 등과 한국에서 특별한 여행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웃음과 감동을 적정하게 배합하여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재미와 의미 또한 적정하게 배합되었다.

 

허슈밍 감독 사진 BIFF
허슈밍 감독 사진 BIFF

첫 번째 한-싱가포르 합작영화

영화를 만든 허슈밍 감독은 7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한국 드라마의 열성 팬인 어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며 “자식은 성인이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는데, 우리 모자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둘의 삶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 사는 자신의 경험이 아시아의 많은 사람과 비슷할 것이라는 허슈밍 감독의 의견에 내 경험 내의 한국인에 국한한다면 동의한다.

한국 드라마가 영화에 오브제인 양 적절하게 사용되어 결을 증폭한다. 각각 별개인 텍스트를 감각적인 고려하에 잘 배치하면 상호텍스트성을 강화하며 많은 이야기를 쉽게 또 풍성하게 담아낼 수 있다.

림 메이화와 아파트 경비원 사이 언어의 문제는, 처음엔 큰 것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소한 것으로 바뀐다. 소통은 언어에 기반하지만, 언어보다 더 강력한 기반으로 작동하는 건 소통하려는 의지와 상호이해이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이에 심심찮게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면 언어가 달라도 소통이 용이한 이유이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가 교차하는 상황을 관객은 자막으로 다 들여다보면서, 극중 배우가 오해 속에서 새로운 이해를 발굴해내는 전지적 시점과 유사한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아파트 경비원 반려견의 죽음 등 잔잔한 흐름 속에 꼼꼼한 설정이 많이 발견된다.

 

영화 '아줌마'의 홍휘팡. 사진 BIFF
영화 '아줌마'의 홍휘팡. 사진 BIFF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다. 예상한 대로이지만 식상하지는 않다. 아들에겐 아들의 인생이 있다. 장성한 아들이라면 더 그렇다. 구세대 엄마에게도 적어도 양육을 마친 다음엔 자신의 인생이 있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현재 당연하지 않은 얘기를 영화는 서글서글하고 훈훈하게 잘 풀어냈다.

 

영화 '아줌마'의 허슈밍 감독과 배우 홍휘팡 강형석. 사진 BIFF
영화 '아줌마'의 허슈밍 감독과 배우 홍휘팡 강형석. 사진 BIFF

괴테의 <파우스트>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 인간에 당연히 아줌마가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까진 당연하지 않았다. 영화 <아줌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삶 속의 이 금기를 정색하지 않은 채 깨야 한다고 영화의 언어로 힘주어 말한다.

 

글·안치용
영화평론가

사진·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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