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에 대한 오해: ‘NFT는 사기다’
사기란 ‘사람을 속여 착오를 일으킴으로써, 금전적 손실을 보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블록체인에서 유통되는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 이하 NFT)’을 활용한 디지털 자산은 사기꾼들의 좋은 먹잇감이라 할 수 있다.
NFT는 2021년 영국의 사전 전문 기업 콜린스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며 빠르게 확산한 기술개념으로, 실제로 보급돼 활용된 것은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NFT에 대한 설명은 복잡다단하지만,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인터넷을 기반한 가상세계에서 사물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기술’이다. 컴퓨터 파일에 구매자 정보 등 고유 인식 값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소유권을 보증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현재(2023년 1월 기준)까지 소유권과 저작권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모호하다. “무채물(無體物)인 디지털 콘텐츠는 민법상 소유권을 인정받는 물건에 해당하지 않아 소유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게 다수설”(이지은, 법률사무소 리버티 대표 변호사) 이라는 의견에 필자도 동의한다. 지난해 영국 법률위원회에서 제3의(가상세계) 소유권 개념 창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으나, 한국에선 현실과 가상의 권리관계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법조계에서도 이제 막 시작된 실정이다.
그러므로 NFT 자체는 이제 막 나타난 ‘신기술’이며, ‘블루오션’이다. NFT는 가상현실에서 운용된다는 특성상 ‘게임콘텐츠’와 자주 비교되지만, 개별적 가상세계를 향유하는 공동체의 사용으로 유지되는 게임의 성질과는 별개의 것으로 봐야만 한다. NFT 기술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무한한 가상세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NFT 기술의 탄생으로 인류는 현실을 기반으로 ‘실체’가 없는 ‘실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장 보드리야르의 개념을 일부 빌려 응용하자면, 파생 실재(Hyper-réel)의 세계에서 무한한 창조를 통해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른바 ‘제약 없는 경제활동’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3의 공간, 이 실체 없는 실재 세계의 발전 가능성과 속도를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과 법체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간극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포착한 사기꾼들이 투자 사기, 판매 사기, 저작권 사기 등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NFT는 사기꾼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 맞다. 그러나 그만큼 기회를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기술 적용 사례를 소개한다. 바로 조각난 국보에 대한 이야기다.
NFT 가위가 국보를 조각내 팔았다
주지하다시피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에 대한 역사·문화적 사료의 의미를 넘어선 특별한 국보다. ‘한국’과 한국인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재로 볼 수도 있다. 일제 침략기 이후 실종됐던 훈민정음해례본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40년 경북 안동의 한 고택에서 거간꾼이 소유하고 있던 것을 발견해 10배의 웃돈을 주고 구매했다. 이후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을 설립해 보관해 온 사유재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송미술관은 2021년 8월 15일, 국보 70호 훈민정음해례본을 NFT로 발행해 판매했다. 훈민정음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따라서 훈민정음해례본을 사유재산의 관점으로 본다면 NFT 콘텐츠로 발행하는 것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국가 지정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탁본·영인하거나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할 때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NFT는 100개 한정으로 발행되는 동시에 커뮤니티 혜택을 부여받았고, 개당 1억 원에 완판됐다.
거두절미하고 이 사건은 2021년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뜨거운 화두 중 하나였다. 훈민정음해례본의 NFT 판매는 여러모로 세계 최초를 기록했다. 우선 문화재 기반 NFT 콘텐츠로서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국보가 NFT로 발행된 것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였다. 훈민정음해례본 원본의 현 소유주인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공개 인터뷰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고 이를 적법하게 보존해 향유하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술관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를 바라보는 문화예술계의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국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 주였으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문화재를 구체적인 액수로 환산해 디지털 콘텐츠로 판매하는 것이 결국 돈벌이가 아니면 무엇이겠냐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한편으로는 더욱 많은 사람이 국보와 문화재를 향유하고 이를 통해 실물 국보를 좀 더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일이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 간송미술관은 더욱 과감한 행보를 보인다. NFT 가위를 들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논란 이후 2022년 6월, 조선의 3대 풍속 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의 화첩이자 국보인 ‘혜원전신첩’의 30점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 ‘단오풍정’의 온전한 디지털 이미지를 355개로 가위질해 조각낸 후 NFT 콘텐츠로 다시금 발행한 것이다. 각 조각은 개당 16만 원에 완판됐다. NFT는 발행되는 콘텐츠마다 고유번호가 매겨지기 때문에 각각의 NFT가 모자이크처럼 작품 내 특정한 이미지를 대표하게 되며, 스스로 가치를 가지게 되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 속 등장인물들을 기반으로 NFT 캐릭터를 발행하고 이를 간송미술관 홈페이지 속 가상공간인 <간송 메타버스 뮤지엄> 안에 배치해 전시하기도 했다.
국보를 ‘NFT’로 ‘소유’했다면, ‘멍청이’인가?
한편 영국의 아티스트인 로버트 뱅크시(Banksy)는 자신의 대표작들 중 하나인 ‘멍청이들(Morons)’을 NFT 콘텐츠로 발행해 약 4억 원(2023년 현재 기준 9억 원의 가치)에 판매했다. 그는 얼굴 없는 현대미술작가이자 예술 행동주의자이며, 독특한 화풍과 자신만의 표식을 특징으로 길거리나 벽에 미술계와 구매자들을 조롱하는 작품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기존 미술계 및 구매자들과 가장 치열한 대립을 벌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반전을 노래하며 길거리에 그린 그림까지 뜯어가 경매에 부치는 사람들에게 질린 뱅크시는 2018년 10월 런던 소더비(Sotheby) 경매에서 자기 대표작품 ‘풍선과 소녀’가 낙찰되자마자 스스로 작품을 파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미술계를 비판했다. 그러나 기계 고장으로 퍼포먼스는 중단됐으며 오히려 반쯤 파쇄된 작품이 15억 원에 낙찰되는 기록을 세웠다. 2021년 10월에는 해당 작품이 다시 약 301억 원에 판매됐다.
‘멍청이들’은 2018년 10월 소더비 경매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묘사한 비판적 작품이다. 이후 그는 공개 유튜브 계정을 통해 해당 작품의 원본을 불태우는 장면을 생중계했다. 뱅크시의 대변인은 “현실의 예술품은 언제든 복제되거나 재현될 수 있으나, 예술품이 현실에서 사라짐으로 인해 NFT는 진정한 의미로서 소유권을 증명하게 된다”라고 말하며 꾸준히 NFT 발행을 시도하고 있다.
NFT의 실체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할 때
문제는,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NFT’에 대한 인지부조화와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촉발된다. 디지털 세상으로 전이된 ‘훈민정음해례본’과 ‘혜원전신첩’의 발행자와 구매자들, 그리고 스스로 작품 원본을 태워버리고 NFT로 발행해 원본 없는 실체의 소유 사례를 증명해 낸 뱅크시는 NFT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향유자다. 이들 모두가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실체 없는 콘텐츠를 발행하고 소비하는 위의 사례들을 어떻게 봐야만 할까? 뱅크시의 ‘멍청이들(Morons)’에 묘사된 것처럼 문화예술의 외연에만 이끌려 수억의 돈을 소비하는 나이브한 유행 편승론자로 봐야 할까? 아니면 예술품에 대한 단순 팬덤이 발명해낸 새로운 놀이 형태를 향유하는 자본주의적 호모 루덴스(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본질은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보는 인간관)로 봐야 할까?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물’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이해하며, 사물이 무에서 생겨나 무를 추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나아가 장 보드리야르는 ‘사물’이란 ‘전형적인 암호’라고 말했다. 현실의 사물이 종국에는 일종의 ‘기호’로 표상하는 것이다. 사물은 상품, 자본, 패션, 광고, 성, 육체, 미디어, 정보, 코드, 사회적인 것, 정치적인 것, 예술 등을 총망라하며 인간을 압도하고 유혹한다.
또한 사물은 사물 그 자체와 소비 주체들을 통해 파생되는 기호 뒤에 숨기 때문에 실재계 뿐만 아니라 실재계의 부재, 결말에는 주체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인류의 등장과 물물교환의 발생 이후 소비 주체는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현실의 ‘사물’을 획득하고 소유하며 발전했다. 이렇듯 현실 사물의 ‘소유’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소비개념은 현대에 이르러 빠르게 역전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웹상으로 전이되며 주체가 부재하거나 희미해진 ‘사물’이 디지털 코드 뒤에 숨어 공유되며, 향유하고 즐기는 대상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술은 위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웹의 등장 이후 웹 이용자가 여태껏 공유재, 혹은 공공재로 인식해 온 각종 형태의 밈(Meme,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 요소), 혹은 웹상에서 이미지로 떠도는 예술가의 작품들, 혹은 사진으로 기록된 국보의 이미지 등에도 공식적인 소유권을 보장할 수 있다. 현실에선 분명한 소유재였으나 웹상으로 전이되며 공유재로 인식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파생된 모든 사물의 전이본이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거래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 마침내 구현된 것이다. 즉 현실의 사물이 웹으로 전이됨과 동시에, 현실의 사물은 별개의 존재로 부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웹으로 전이된 사물은 다양한 스토리를 창출하며 하나의 개별적 콘텐츠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NFT’는 과거의 물질적 가치를 기준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어쩌면 NFT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사물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기술이다. ‘NFT’라는 기술은 이미 등장했으며,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다른 세계의 문제로 보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물의 새로운 보존과 향유 방식의 가능성을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다.
글·이지혜
문화·영화평론가. 제16회 <쿨투라> 영화평론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르몽드 디폴로마티크>에서 문화평론을 연재하고 있으며, K-컬처 스토리 콘텐츠 연구원으로 경희대에서 인문학 관련 강의를 한다. 문화현상과 NFT를 연구하고 발표하고 있다.
*이 원고는 2022년 12월 10일 ‘인문콘텐츠학회 2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포스터 발표·수상한 내용 중 일부를 수정 후 확장한 것임을 밝힌다.
[참고문헌]
장 보드리야르, 하태환 역, 『시뮬라시옹』, 2001.
배영달, 「사물이란 무엇인가」, 프랑스문화연구 제24집, 2012.
배영달,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읽기』, 2018.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한류몽타주: Zoom 3. 그라피티, 거리 문화에서 주류 미술로 」,
『2022년 한류나우(Hallyu Now) - 1+2월호 Vol.46(격월간 한류 심층 보고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2. 01.
박수호, <1억짜리 훈민정음 NFT 화제… 간송 미술관은 왜 국보로 NFT 사업을 할까?>, 매경이코노미, 2022.06.20. (https://www.mk.co.kr/economy/view/2022/536195, 2023.01.15. 최종접속)
임혜령, <“NFT는 법적 소유권 대상 아냐… 표준약관 도입을”>, 법조신문, 2023.01.06. (http://news.koreanbar.or.kr/26573, 2023.01.18일 최종접속)
BBC 뉴스, <Banksy art burned, destroyed and sold as token in ‘money-making stunt’>, 2021.03.09.(https://www.bbc.com/news/technology-56335948, 2023.01.15. 최종접속)
간송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http://kansong.org/hm-nft/)
뱅크시 공식 홈페이지(https://banksy.co.uk/index.html)
뱅크시 공식 인스타그램(@banksy)
뱅크시 팀의 예술활동 및 NFT 공식 유튜브 ‘Burnt Finance’ (https://www.youtube.com/@burntfinance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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