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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국가탄소감축목표(NDC) 이행을 위한 시민탄소감축목표(CDC)의 필요성
파리 국가탄소감축목표(NDC) 이행을 위한 시민탄소감축목표(CDC)의 필요성
  • 김영호 l 전 산업자원부 장관
  • 승인 2023.03.3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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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기후 변화 협정, 일명 ‘파리협정에 의한 국가 탄소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NDC) 이행에 대한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코로나 19와 미중 대결로 가중된 공급망 혼란 그리고 금융 위기 등... 이런 몇 겹의 위기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물론, 탈퇴했던 파리협정에 복귀하며 문을 연 바이든 정부마저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후퇴를 보여준다. 이미 교토의정서 체제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파리 기후협약 기념식>

1997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3차 당사국총회(COP 3)에서 출범한 교토의정서 체제는, 2005년 실패로 끝났다. 이를 극복하고자, 2015년 21차 파리 당사국회의(COP 21)에 전 세계 195개국이 파리 협정을 체결했다. 이 신기후체제가 출범한 지 8년이 흘렀다. 올해 11월 두바이 당사국 총회(COP 28)는 각국이 제시한 파리협정에 따른 감축 목표에 대한 ‘전 지구적 이행 점검(GST)’을 처음 시행한다. 지난해 11월 이집트 COP 27은 2021년 총회 합의 수준에 멈춰있다. 아직 변화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 신기후체제는 ‘폭우 속 촛불’ 신세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파리 신기후체제를 위협하는 ‘폭우’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기후정의론’이다. 기후정의의 요구가 날로 높아지면서 신기후체제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정의’는 기후변화의 주범 즉 가해자는 선진국의 부자들이고, 피해자는 개도국의 시민들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세계 빈국의 시민들을 결집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배경으로 지난해 COP 27은 이 기후정의 운동의 요구를 수용해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기금안을 합의했다. 그러나 ‘손실과 피해’ 기금의 법적 의무는 끝내 수용되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의 당사자는 시민들이다. 피해자인 시민들이 기후정의에 가장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파리 신기후체제의 핵심축인 국가 탄소감축목표(NDC)에서는 시민은 기후변화의 객체, 계몽 대상 또는 ‘여건’에 그친다. 반면, 기후정의론에서는 기후변화의 피해자로서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존재인 시민들을 기후변화의 새로운 주체로 인식하며 시민참여체제를 제기한다.

만일 기후정의론이 파리 신기후체제를 비판하는 데 그친다면, 파리협정을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시민들 스스로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파리 협정에서 제시된 국가별 기준, NDC에 대응하는 시민 개개인의 CDC(Civil Determined Contributions, 시민 탄소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파리 협정의 신기후체제는 결정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한층 과감하게 기후정의론을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기후정의론에 밀려 과거 교토체제처럼 유명무실해질 것인지 결정되는 시점인 것이다.

파리 신기후체제는 각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제시하는 NDC를 근간으로 한다. 그런데, NDC를 실현할 구체적 이행계획이 있을까? 또한 이행계획대로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한다고 해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둘 다 어려워 보인다. CDC는 이런 신기후체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한편, 시민을 기후변화의 적극적 주체로 끌어들여 NDC의 재구성을 끌어낼 수 있다. 나아가, ‘국가’라는 틀을 넘어 ‘시민’의 틀에서 세계체제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CDC가 기후정의론과 파리 신기후체제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분노’, 부의 불평등이 기후불평등으로

‘파키스탄의 분노’. 이 말은 최근 기후정의를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지금 세계의 탄소배출에서 차지하는 파키스탄의 비중은 0.4%에 불과하다. 반면, 이른바 선진국 G20 국가들의 탄소배출량은 무려 80%로, 파키스탄의 200배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해 기후변화로 일어난 재해는 파키스탄에 집중됐다. 파키스탄 국토의 1/3이 홍수 피해를 입었으며 1,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사망자들 중 아동이 1/3나 됐다. 3,300명이 이재민이 됐고 3,500억 달러라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시민들은 이 사태를 ‘기후 디스토피아’라 했고, UN사무총장은 ‘기후대학살’이라 명명했다.

이런 기후위기의 책임과 피해의 불일치, 즉 ‘기후불평등’ 사태는 대개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난다. 2013년 필리핀도 처참한 기후재앙을 겪었으며, 남태평양 중앙에 위치한 섬나라 투발루는 해수면이 상승해 국토의 80%가 물에 잠겼다. 투발루 외무장관은 물속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COP 26 회의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글로벌적응센터(GCA)는 기후변화로 아프리카 인구 6억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있다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파키스탄의 분노’는 국가 간 불평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 국가 안에서도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서민들 간 부의 불평등이 기후불평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1년 여름, 독일에서 기상이변에 따른 폭우로 2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대부분 가난한 시민들이었다. 이렇게 부의 불평등이 기후불평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현실 속에서, 2000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와 2년 후 2002년 8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지구 서미트’에서 기후정의 27개항이 합의됐다. 이는 현재 기후정의 운동의 모태가 됐다.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법적 장치들이 세계 각국에서 마련되고 있다. 2021년 4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미래 세대에게 온실가스 삭감의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위헌이며, 현세대가 미래세대에 저지르는 온실가스 범죄는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결했다. 이 재판 결과에 따라, 독일 정부는 온실가스 삭감목표를 1990년 기준 55%에서 65%로 대폭 강화했다. 

 

“만국의 기후채권자들이여, 단결하라!”

2021년 2월, 프랑스 파리 행정법원은 “프랑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 소홀히 함으로써 발생한 생태적 피해에 책임이 있다”라고 판결했다. 2013년의 태풍 하이엔으로 필리핀에서 약 8,000명의 사망자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그린피스 동남아 지부는 47개의 거대 다국적기업을 필리핀 정부 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호주의 세계 최대 광산기업 BHP, 영국의 에너지 거대기업 BP, 미국의 엑슨모빌, 프랑스의 토털에너지 등이 제소 대상이 됐다.

이 기업들의 혐의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1.4%를 배출하고도, 지구 온난화의 책임에 상응하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2022년 5월 필리핀 정부인권위원회는 “이 기업들이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도덕적, 법적 의무를 져야 할 것이다”라고 회신했다. 

한편, 한국에서의 사례를 보자. 2021년 12월, 한 시민단체가 정부의 형식적 탄소삭감 정책으로 미래세대에 기후재앙을 안기고 있다고 국가 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행위가 없는 이상 법인에 대해 조사할 권한이 없다. 또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라고 각하했다.

5~6년 전만 해도,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관련 연구자나 환경단체 회원 등 일부에 불과했다. 기후에 대한 관심이 확산된 계기는 ‘주가’와 ‘재난’이다. 기후위기 대응이 주식가격에 반영되는 경향이 점점 높아지자, 주식투자자들의 기후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졌다. 또한 세계 도처에서 기후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자, 재난에 취약한 시민들은 살기 위해 관심을 가져야 했다. ‘기후재난시민들’의 등장인 것이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에스델 듀프로 미국 MIT 교수는 “기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서 대표적인 오류는, 기후위기를 줄이려는 노력과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을 분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기후재난에 노출될수록 ‘호모 클리마투스(Homo-Climatus)’로서 맹렬하게 선진국 부자들에게 ‘기후채무’의 상환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이런 연대, 즉 ‘만국의 기후채권자들의 단결’이야말로, 기후정의운동의 핵심인 ‘선진국의 기후채무론’을 실현할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문제에 대해 남 탓만 하지 말고 내 탓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기후변화의 문제는 모든 시민이 삶의 방식을 바꾸는 문제”라고 단언한 것처럼 말이다. 시민은 소비자이자 생산자다. 이 모든 행위에 대해 권리와 책임을 지닌다. 선진국의 경우 소비자로서의 책임은 생산자로서의 책임보다 중요하다. 기업이 탄소발생 부문 내지 공정을 개도국에 이전해, 탄소감축으로 포장하고 필요한 제품은 역수입이나 아웃소싱해 소비하면서 개도국을 기후악당으로 몰아가는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책임과 목표, CDC가 중요한 이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이회성 의장은 “IPCC가 기존 ‘생산’보다 ‘소비’를 기준으로 탄소배출량을 계산했더니, 서유럽 북미 일본 호주 등은 이미 소비가 생산을 역전했다”고 했다. 이런 선진국의 ‘탄소배출 책임 전가’ 행태는 나아가, 탄소 감축 기술을 개발해 개도국에 이전함으로써 2차 수익을 확보하는 것까지 발전하고 있다. CDC(시민 탄소 감축 목표)를 제시하면서, 소비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생산자로서의 기업시민의 책임 또한 중요하다. 미국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 창업주 이본 쉬나드는 ‘호모 클리마투스’로서의 기업시민의 모습을 보여줬다. 쉬나드는 ‘지구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는 말과 함께, 30억 달러에 달하는 의결권 없는 주식을 기후변화 대응 운동에 넘겼다. 

또한 탄소 제로를 위해 재생 에너지 100% 사용을 목표로 하는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인 RE100 참여기업이 390개사에 이르며, 회원사가 급증하고 있다. 국제 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2021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용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태양광 및 풍력의 발전 비용은 13~15% 절감됐다.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기술혁신 경쟁이 가격 절감까지 이어진 것이다. 2022년 3월, UN 환경총회에서는 2024년까지 플라스틱의 생산-유통-폐기에 이르는 전 주기를 규제하고자,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플라스틱 협약’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분노하고, 책임지고, 연대하는 기후시민의 탄생

우리는 피해에 분노하는 기후(Climate) 재난 시민들이자, 소비자(Customer)로서의 책임을 지는 시민이며 생산자인 기업(Corporate)으로서 책임을 지는 시민이라는 3C로 요약되는 기후시민이다. 세계사에서 새로운 기후시민의 탄생인 것이다. ‘국민’도 ‘개인’도 아닌 ‘시민’이라는 개념을 쓴 것은, 국경을 초월한 연대의식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기후시민은 국경 없는 기후 ‘코호트(Cohort: 특정 기간에 특정 경험을 공유한 이들의 집합)’를 통해, 국경을 초월해 탄소배출 기업 또는 개인에게 함께 분노하고, 기후채무자들에게 상환을 요구하는 기후채권자들의 연대다. 동시에, 미래세대를 채권자로 하는 공동의 기후채무자연대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시대는 국경없는 세계화 시대다. 금융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저물고 있다. 이제, 기후시민의 탄생으로 인해 ‘탄소중립 세계화’의 새벽이 열리고 있다.

이 기후시민들이 시민 탄소삭감목표(CDC)를 제시하고 이행하자는 것이다. 물론 CDC 실현을 위해 준비할 것들이 많다. 우선 기술적 기초로서 탄소중립 실천 포인트제 ESG(친환경 및 사회적 책임경영) 지속가능 발전성, 지표(SDPI)등을 적용하는 철저한 정비 등이 필요하다. ESG 원칙은 ESG의 명성만큼 개념이 정착되지 않아 적지 않은 혼란이 생기고 있다. 따라서 UN의 국제표준화작업(SDPI)의 조속한 마무리가 필요하다.

ESG의 본질은 ‘책임’, 즉 권리보다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정신이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Invisible heart)을 기대한다. 리처드 티트머스(1)가 주장한 ‘선물(Gift)경제론(영국의 이타적 헌혈제도가, 미국의 이기적 매혈제도보다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근거로 한 이타주의 경제이론)’처럼 오늘날 ESG를 잘하는 기업이 수익율이 높다는 통계를 중시한다. 또한 제네럴일렉트릭(GE)의 ‘Green is green’(2) 구호를 차용해 R is R(Responsibility is Rewarded)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ESG를 실천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경제 제도가 중요하고 시급하듯, CDC를 실천하는 시민이 성공하는 사회제도 또한 중요하고 시급하다. CDC의 모델은 강제성이 전혀 없는 파리협정도, 강제성이 강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3)도 적합하지 않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윌리암 노드하우스의 ‘기후클럽이론’(4)을 풀뿌리 모델로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EU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이미 기후 시민회의가 부분적으로 조직돼 있다. 프랑스에 CCC(Convention Citoyenne pour le Climat, 기후를 위한 시민협의회)’, 영국에 CAUK(Climate Assembly UK, 영국기후의회)’가 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아동기후의회’가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엘리노어 오스트롬은 기후위기 문제를 가레트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 개념을 확대해 극복하는 문제로 접근했다. 그리고 ‘지구 공유지로서의 기후’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최초의 여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됐다. 오스트롬은 기후위기 문제의 핵심은 ‘무임 승차’라고 지적한다. 그는 영국 경제학자 아서 세실 피구의 내부화 원리를 지구 차원으로 확대했다. 기후위기를 ‘지구 공유지 파괴’로 보고, 지구 외부 불경제의 비용을 지구의 환경비용으로 개별 국가단위에 내부화하는 것으로 봤다. 

지구 외부 불경제를 초래한 범인은 선진국일 것임에도, ‘피구세’는 개도국에 내부화된다. 결국 기후위기 문제를 일으킨 선진국은 ‘무임승차’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서, ‘피구세’를 국가별 분담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기후 문제의 경우는 탄소방출 책임의 주체별로 내부화함으로써, ‘무임승차’ 문제를 극복하고 공유지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바로 CDC다.

1992년의 UN기후조약, 1997년의 교토의정서, 2009년의 코펜하겐합의, 2015년의 파리협정. 이렇듯 20년 넘게 UN주도 기후변화 대응의 발자국이 가리키는 일관된 기본원칙은 CBDR(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이다. 이는 UNFCCC(기후변동에 관한 UN 프레임워크 조약)에도 명기된 기본원칙이다. 여기서 공동의 책임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책임을, 차별화된 책임이란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누적치에 따른 책임을 가리킨다. 역사적 누적치의 계산 결과는 미국 25%, EU 22%, 영국 22%, 중국 12.7%, 러시아 6%, 일본 4%다. 현재 배출치의 계산 결과는 중국 28.2%, 미국 14.5%, 인도 6.6%, 러시아 4.7%, 일본 3.4%다. 이는 CDC를 고려하지 않은 생산 측면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계산된 수치다.

그러나 20년이 넘도록, 역사적 위기 때마다 확인된 기후문제의 기본원칙인 CBDR에 대한 위반 내지 불신에서 문제가 시작됐다. 지금도 파리 협정이 CBDR 원칙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기에, 기후정의 운동이 폭발한 것이다. 이 기본원칙의 문제는 다름 아닌, 선진국이 개도국을 상대로 저지르는 ‘탄소배출량 전가’의 문제다. 기후위기처럼 국경을 초월한 이슈에 있어서, 이는 심각한 문제다. 탄소 ‘이전’을 ‘감축’으로 표현하는 것은 ‘기만’, ‘사기’, ‘누명 씌우기’와 같다. 실제로는 기후위기의 피해자인 개도국에, 범행의 증거(탄소배출 공정)를 떠넘겨 가해자로 몰아간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CBDR 원칙의 문제는, CDC의 도입의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탄소배출을 줄이면, 채무를 줄여주겠다?

유엔 환경계획(UNEP)은 2021년 보고서에서 ‘기후 담보 채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는 개도국이 기후 변화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한다는 조건으로, 기존의 채무탕감이나 이자 경감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지금 개도국 중 72개국이 채무위기에 빠져있다. “2022년 G20 국가들이 제시한 채무탕감 조치만으로는 이들 국가가 기후위기에 대처할 힘이 없다”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다보스 포럼에서도 채무탕감 조치가 제안됐다.

그러나 개도국은 물론, 전 세계가 과잉 부채의 늪에 빠져 있는 현실이다. 미국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채무조정이 필요한 개도국의 국가채무는 2,000억 달러에 달한다. 또한 국제금융협회(IIF)가 추산한 2022년 10월 말까지의 전 세계 정부와 가계의 부채 총액은 290조 6,000억 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발 고금리가 본격화하면서, CDC의 출발을 가로막고 있다.

또 다른 제안이 있다. 2021년 노벨수상자 50명이 공동으로 한 ‘인류를 위한 단순하고 구체적인 제안’ 내용을 보자.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5년간 2%씩 군사활동을 축소해, 절감된 비용의 50%를 팬데믹, 기후위기, 빈곤 등의 문제 해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군사 활동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5~6%에 달한다. 이는 항공 1.9% 해운 1.7% 철도 0.4% 파이프라인 0.3%를 모두 합친 것보다 높다.

이 제안의 실현을 위해서는 첫 번째로, 군사부문의 탄소배출 보고가 ‘자발적 보고사항’이 돼야 한다. 예외사항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기후시민은 단합해 군사부문을 기후위기의 내부 문제로 포함시켜야 한다. 군사 활동에 의한 탄소배출 보고를 의무화해야 하는 것이다. 파리협정에서 선진국들이 매년 1,000억 달러의 개도국 지원을 약속한, 지난해 COP 27 총회에서의 ‘손실과 피해’ 보상기금 합의가 CDC 시행을 위한 채무탕감 및 군사부문의 탄소배출보고 의무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기후시민들의 연대에 의한 CDC의 출범이 채무탕감과 군사 활동 축소를 끌어내는, 거대한 압력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글·김영호
경북대 명예 교수.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아 한국의 산업·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 후 유한대학 총장,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성균관대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시민연대에 의한 시빌 아시아(Civil Asia)’를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1) 20세기 후반 영국 복지국가를 설계한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사회정책 분야에 국제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 런던정경대학(LSE) 사회정책학과 교수.
(2)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2005년 5월 “환경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Green is Green”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기서 앞의 Green은 환경을, 뒤의 Green은 녹색을 띤 달러 지폐를 가리킨다. 환경이 경제적으로 가치가 높다는 뜻이다.
(3)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은 환경규제가 미비한 국가의 생산 제품에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 EU의 정책.
(4) 노드하우스는 기후협약의 잇따른 실패를 겪은 뒤 특권과 벌칙이 있는 ‘기후클럽’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기후협약이 강제성이 없었던 것에 대해, “무임승차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유럽연합(EU)이나 세계무역기구(WTO)처럼 회비와 특권이 있는 배타적 클럽을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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