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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사랑한 <석파랑> 별장에서 와인을 나눈다는 것
흥선대원군이 사랑한 <석파랑> 별장에서 와인을 나눈다는 것
  • 김유라 기자
  • 승인 2024.06.12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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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언제나 ‘만남’이 있다.

 

산을 끼고 자리한 기와집. 돌담 너머 고즈넉한 마당을 지나면 소담한 한옥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넉넉한 분위기에 고향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이 피어나고. 세월을 견디며 꼿꼿이 선 기둥에선 명문가의 기상이 엿보인다. 조선 왕실의 궁중요리와 반가의 음식을 선보이는 <석파랑>은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도록 도와주는 만남의 장소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부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가 살았던 방에는 상견례를 앞둔 부모님의 떨리는 숨이 녹아 있고, 고종황제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세문에는 갓 결혼식을 치르는 부부의 설렘이 담긴다. 돌잡이로 실을 붙잡은 아기의 웃음은 흥선대원군이 사랑한 석파정 별당에 남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는 이 레스토랑은 과연 누가 만들고 가꿔온 것일까? 바닥이 따뜻하게 데워진 방에서 <석파랑>을 이끄는 부녀, 김주원 대표와 김수진 실장을 만났다.


<석파랑>은 서울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한 식당입니다. 한국 전통의 코스요리를 전문으로 하며 결혼식, 돌잔치 등 행사도 열고 있는데요. <석파랑>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김주원 대표 “과거에 몸담았던 문구류 업계가 사양 산업이 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을 때였어요. 운명적으로 지금의 <석파랑> 부지를 만났죠. 당시가 1989년 초봄 무렵이었는데요. 부동산 중개인이 보여준 이 땅에 낙엽이 떨어져서켜켜이 쌓여 있고, 다리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새들이 날아다니고 너무 분위기가 좋은 거예요.두 번 생각하지 않고 얼른 이곳을 매입했죠.”

고전미 돋보이는 석파랑 내실
석파랑 김주원 대표

첫눈에 반하신 거군요. 과연 돌 틈에서 솟아난 소나무와 고풍스러운 한옥 건물이 어우러져서 역사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렇다면 <석파랑>의 메뉴로 한국 전통 음식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김주원 대표 “막 식당 운영을 하려는데, 식견을 넓혀야 하잖아요. 그래서 대학교의 음식 관련교육과정에 등록해서 공부해보고, 해외에 나가서 음식 투어도 해보고, 어깨너머로라도 배워야겠다 싶어서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식당들이 오래 운영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나카소네 일본 총리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만난 집’, ‘노태우 대통령과 미야자와 일본 총리가 만난 집’처럼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걸 만들어 보자’고 다짐했어요. 외국의 누구에게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식당, 음식뿐 아니라 의미를 파는 식당 말입니다. 역사적인 건축물에 어울리는 한식을 선택했고, 굴뚝 하나, 식기 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여 가꿔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민속박물관에 자문을 구해가며 전통의 방식을 재현했죠.

메뉴를 선정하실 때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김수진 실장 “물론 아름다운 비주얼에도 신경을 쓰고요. 특히 요즘엔 궁중 요리라고 해서 꼭 과거에만 머물기보단, 현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 업장에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골고루 방문하세요.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것을 알리기 위해 본연의 전통을 한껏 살려야 하구요, 또 한편으로는 현대식 한식이 각광받다 보니, 현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해야 하죠. 이렇게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고민을 항상 하는 것 같아요.”

<석파랑>은 전통주뿐 아니라 와인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요즘이야 와인과 한식의 조화가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1993년 <석파랑>이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김수진 실장 "맞아요. 처음에는 와인이 없다가, 2008년부터 손님들의 요청으로 와인을 라인업하기 시작했어요. 저희는 이렇게 손님이 원하는 주류를 들어오는 편이에요. 와인은 손님들의 입맛에 맞도록 대중적인 제품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웨딩, 돌잔치 같은 모임의 젊은 고객들이 와인을 많이 드시는데요. 처음엔 생소했을지 몰라도, 와인이라 해서 꼭 외국 음식과 먹어야 한다는 편견은 없어진 지 오래인 듯합니다.”

맞아요. 이제 와인에는 국경이 없죠. 그렇다면 전통 한식과 어울리는 와인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김수진 실장 “궁중 음식은 화려한 비주얼과 반전되는 은은한 맛이 매력적이에요. 저희 음식은 간이 세거나 맵지 않기 때문에 어떤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다만 개성이 강한 와인 보다는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가볍고 부드러운 맛의 내추럴 와인도 훌륭한 선택이에요. 개인적으로 비싼 와인도 물론 좋겠지만, 맛있고 가격이 합리적인 와인을 제안 드리는 것을 즐겁게 생각해요.”

한식과 잘 어울리는 몬테스 알파 카버네 소비뇽

가장 추천하시는 한식(석파랑 메뉴 포함)과 와인의 조합이 있나요?

김수진 실장 “‘샴페인과 주전부리’라고 해서, 버섯과 육포, 마늘 등을 건조한 가벼운 에피타이저가 있어요. 다양한 재료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화의 물꼬를 트기에도 좋구요. 슴슴한 맛과 샴페인의 버블이 딱 어우러지며 입맛을 돋궈줘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식사를 하는, 기분 좋은 스타트가 될 거예요.”

오랜 시간 업장을 운영하시다 보면, 기억에 남는 손님들도 있을 거 같아요.

김수진 실장 “저희 한옥방에서 상견례를 했던 손님들이 나중에 저희 마당에서 결혼식까지 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상견례 때는 손님들끼리 어색했다가 결혼식 때는 가족이 되시는 그런 과정을 보면 참 뭉클하게 다가와요. 이번호의 주제가 ‘아비투스’라고 들었는데요. 와인으로 비유하자면, 우리 인생도 포도와 다름없는 것 같아요. 농부가 좋은 땅과 영양분으로 포도를 성장시키듯이 우리는 주위에서 좋은 영향을 받으며 삶을 가꿔나가게 돼요. 저희의 정성과 진심이 그분들의 삶에 작은 영양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요. 누군가의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순간을 <석파랑>이 함께 만들었고, 열매를 맺어갈 수 있게 내가 도왔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보람되죠.”

방문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방문객들에게 남기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김수진 실장 “저희가 1993년에 오픈해서 30년 가까이 영업을 하고 있어요. 아버지에 이어 제가 세대를 이어가며 직원들과 함께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SNS 맛집과는 조금 다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희는 전통과 미래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오늘도 정성 들인 음식을 준비합니다. 손님들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점을 알아봐 주시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인생이 빛나도록 돕고 싶습니다.”

 

* 해당 기사는 나라 셀라의 협찬으로 편집ㆍ제작되는 와인 매거진 <NARA>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김유라

사진 생동 스튜디오 @saengdong.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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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기자
김유라 기자 kimyura@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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