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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적출된 마음과 생략된 얼굴들 <오마주>(2022)
[이하늘의 시네마 크리티크] 적출된 마음과 생략된 얼굴들 <오마주>(2022)
  • 이하늘(영화평론가)
  • 승인 2024.10.07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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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 스틸컷
'오마주' 스틸컷

<오마주>는 타인에 의해 적출 당한 영화에 대한 애정들을 복원해 한 컷씩 이어붙이는 영화다. 10년간 영화를 찍으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여성 영화감독 지완은 자신이 만든 영화의 제목처럼 남편과 아들에게 소위 ‘유령인간’ 취급을 당한다. 남편에게 빨대를 꼽고 살아간다는 소리를 듣는 지완은 아들에게마저도 '엄마처럼 빨대를 꼽고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를 그만두라는 주위의 시선과 압박은 거실 창문이 깨져 생긴 균열처럼 견디기 힘들기만 하다. 그마저도 청테이프로 간신히 이어 붙여 마음을 다잡는 중인데, 이러한 지완의 태도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드러난다.

지완은 탈의실에서 수영장으로 들어가고, 이때 카메라는 지완의 속도에 맞춰 공간에 진입한다. 막상 지완은 수영장 안에서 다른 이들의 수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멈춰 선다. 또다시 카메라는 멈춰 선 지완을 묵묵히 지켜본다. <오마주>의 카메라는 지완 그 자체다. 마치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중 맞춤법 안돼와 안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 지완에게 1962년 제작한 한국의 두 번째 여성 감독 홍재원(홍은원)의 <여판사> 복원 의뢰가 들어온다. 누락된 필름의 일부 대사들을 더빙해서 덧입히는 작업은 지완을 움직이게 한다. 이때의 움직임은 수영장에서의 정지와는 다르게 유연하고 역동적이다.  수직으로 길게 뻗은 수영장 코스와 대비된 자유롭고 넓게 확장된 공간들은 지완을 더욱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후 카메라의 움직임은 지완이 호수 위에서 종종걸음을 하는 백조가 아닌 하늘을 훨훨 나는 새처럼 자유롭다.

 

'오마주' 스틸컷
'오마주' 스틸컷

나아가지 못하고 정지된 상태는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죽음과 맞닿아있다. 지완이 지닌 영화에 대한 고민은 마치 생과 사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것과도 같다. 지완의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영화는 상징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죽음의 그림자는 가려진 혹은 생략된 얼굴을 통해 공포를 발현한다. 공포영화는 흔히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형체와 실루엣만을 드러내는데, 지완은 그러한 얼굴을 목격한다. 자신의 아파트 공영주차장에서 차량 내 연탄 자살을 한 여성이 흰색 천에 얼굴이 가려진 채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는 옆집 여자일 것이라 예측한다. 화장실 벽(레이어) 너머를 통해 들리던 옆집 여자의 소리가 부재한 순간, 지완은 생략된 얼굴 위에 옆집 여자의 얼굴을 덧입힌 것이다.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에서 마리온이 노먼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공간이 베이츠 모텔의 화장실인 것처럼, 벽을 경계로 분리된 공간은 생과 사를 나누는 영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말에 다다라 이는 모두 지완의 추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옆집 여자는 여행을 떠나 그로 인해 집 안의 소리가 부재했던 것. 이에 지완은 그녀가 돌아와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어쩌면 프레임 안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안도감이자 고마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프레임 안에서 여성의 존재는 어떻게 표현되는가. 신수원 감독의 전작 <젊은이의 양지>에서도 얼굴을 드러내는 표현법은 유달리 눈에 띈다. 취업을 준비하던 미래는 대화그룹의 합숙 면접에서 자신의 치부가 밝혀지자 숙소로 돌아와 목티를 최대한 늘여 얼굴 전부를 가리는데, 이때의 얼굴은 옷으로 인해 윤곽만 드러나 오래된 석상처럼 느껴진다. 생략된 미래의 얼굴은 정지함으로써 이후 자살을 시도하려는 상황을 암시한다. 영화가 또다시 생략하는 것은 홍재원 감독의 얼굴이다. 홍재원 감독의 얼굴은 모자와 코트에 의해서 부분만 드러난다. 과거의 기록인 사진을 통해 노출된 감독의 얼굴은 또다시 선글라스를 통해 눈을 가려진다. 이처럼 영화 내에서 여성은 타인에 의해서 생략을 통한 반복적인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혹은 실재하는 공간에서. <여판사>의 내러티브는 이러한 죽음을 비튼 영화의 마법 같은 순간을 담고 있다. 최초의 여판사가 남편에 의해 독살 당한 실화를 홍재원 감독은 다른 레이어를 한 겹 포개어 진실을 덮고, 이로써 여판사의 죽음은 프레임 안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오마주' 스틸컷
'오마주' 스틸컷

지완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자궁과 영화에 대한 꿈을 적출 당한다. 흔히 감독 입장에서 자신의 영화는 마음으로 낳은 자식 같다는 말을 종종 사용하지 않는가. 같은 맥락에서 자궁이 적출되었다는 것은 여성성을 잃은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영화를 품을 수도 출산할 수도 없음을 선언한다. 하혈(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영화가 흘리는 피의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점은 홍재원 감독 역시 적출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홍재원 감독은 영화를 함께하는 동료들에게조차 딸의 존재를 숨겼는데, 수직 구도 아래의 잉태를 들키는 순간은 예술가로서는 새로운 생명 창조와 출산은 실패를 마주하는 것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때문에 소실된 필름을 복원하며 마주한 홍재원 감독은 지완과 자화상처럼 닮아있다. 

영화는 내내 지완이 가졌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본디 '실재했던 마음'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 사이에 있는 그림자는 지완에게 다가와 영화의 죽음과 생명 연장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자신의 그림자와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은 또각 거리는 구두의 사운드를 동반한다. 그 발자국 소리는 지완이 영화에 대한 마음을 적출하려 할 때마다 지완에게 당도하여 걸음들을 복원해낸다. 소실된 필름의 자리와 적출된 지완의 마음의 자리와 닮아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연탄 자살을 한 여성의 죽음을 목격한 지완이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은 하강의 이미지인 반면 공포의 대상이던 여성이 자살한 차량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홍재원 감독의 실루엣이 등장하자 계단은 상승의 이미지로 변모한다. 불확실한 형체들이 프레임 내부에서 사라진 후, 지완은 공포가 아닌 안도를 느낀다. (이때의 그림자는 지완이 홍재원 감독임을 인식한 후다.) 지완의 유령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생략과 절단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연결한다.

 

'오마주' 스틸컷
'오마주' 스틸컷

하지만 <여판사>는 지완에 의해 반복적 재생을 당하며 프레임 안에서 노출되고, 발굴 가능성을 모색한다. 땅 속에 묻힌 유물과 같은 유령인간과 달리 <여판사>는 사료가 되어 다시금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고대한다. 지완이 복원을 위해 만난 사람들 역시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자신의 형체를 소환하게 된다. 그녀는 홍재원 감독과 협업했던 이옥희 편집 기사를 만나며 <여판사>를 마지막 상영한 극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해당 극장은 한 달 후 철거 예정이며, 생명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황폐하다. 지완은 영사실에 올라가(영사실은 가파른 언덕처럼 상승의 이미지다.) 필름을 찾지만 역시나 찾을 수 없으며, 노후 된 극장의 천장 역시 뚫려 영화가 상영되기에 최악의 조건을 갖췄다. 영사기사가 건넨 영사실에 가득 쌓인 모자들만이 지완의 손을 거쳐 집으로 도착할 뿐이다. 중요한 지점은 가져온 모자를 써보던 지완의 아들이 모자의 겉면에서 소실된 필름 롤을 발견했다는 것. 시대의 검열을 당한 장면들이 현재에 넘어와 남성의 손으로 발굴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포인트다. 

극장의 천장 구멍을 통해 새어 들어온 빛에 필름을 대보는 지완의 모습은 마치 성모 마리아가 세례를 받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뚫린 천장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자궁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지완은 다시 이옥희 편집 기사를 찾아가 소실되었던 장면들을 한 컷씩 이어 붙인다. 생략되었던 장면에는 이불을 스크린 삼아 상영한 영화 속 검열된 장면은 여성이 담배를 피는 모습이 담겨있다. 소실된 필름처럼 다시금 한 컷씩 이어붙인 마음들은 지완이 당한 적출의 자리를 가득 메운다. 3번째 영화를 찍고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었던 홍재원 감독처럼 지완 역시 유령인간을 끝으로 더 이상 영화를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완의 이야기는 멈출지라도 홍재원 감독의 소실된 필름을 다시금 이어붙인 것처럼 애정 어린 마음들은 생략되거나 정지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 그렇게 믿는다.

 

 

글·이하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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