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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Numbers (9) -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이 카이사르와 국화주를 마신다
안치용의 Numbers (9) -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이 카이사르와 국화주를 마신다
  • 안치용 l ESG 연구소장
  • 승인 2023.09.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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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읽는 인문학]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황후화>(2007)의 한 장면. 바닥의 노란색이 국화로 극중에서 중양절을 앞두고 궁중을 치장한 것이다.

추동복이 사라진다

지구온난화로 사계절의 구분이 과거와 달라져 가는 추세다. 본래 정장에서 ‘춘추복’이란 여름과 겨울, 겨울과 여름 사이에 입는 의복인데, 요즘에는 따로 챙기는 경우가 점차 줄고 있다. 이 추세라면 춘추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소멸하는 게 시간 문제일 듯하다. 춘추복이 사라지고 하복에서 동복으로 넘어가든가, 어쩌면 춘추복이 동복을 대신할지도 모르겠다. 후자라면 개념상 혹은 내용상 춘추복은 살아남는 것인가, 소멸하는 것인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이런 복식의 변천과 별개로 가을은 그래도 엄연하다. 어려서 우리나라에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배웠고, 통상 3개월 단위로 계절을 구분했기에 가을은 으레 9월에 시작한다. 11월까지가 가을의 영토다. 어릴 때 교과서에 읽은, 어느 수필의 “얇아진 여름옷”이란 표현을 체감하는 시기가 점점 뒤로 밀리고 있지만, 그래서 장차 9월을 여름에 빼앗길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을은 온다.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느긋하게 먹는 게 좋겠다. 가을이 계속 지각할 테니까. 또 더 많이 지각할 테니까.

기상학에서 말하는 가을의 기준은 기온이다. 일평균기온의 이동 평균이 20℃ 미만으로 9일 동안 떨어진 후 올라가지 않는 날을 가을의 시작으로 본다. 이동 평균은 해당일의 앞뒤 4일을 포함한 9일의 평균으로, 예를 들어 10월 5일의 이동 평균은 10월 5일로부터 4일 전인 10월 1일부터 4일 후인 10월 9일까지의 평균을 뜻한다.

그러므로 1년 중 어느 때인가 가을이 올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겨울은 9일간 일평균기온의 이동 평균이 5℃ 미만으로 떨어진 뒤 올라가지 않는 첫날에 시작한다. 가을이 사라지려면 순서상 겨울이 먼저 소멸해야 한다. 죽기 직전에 체험할 한반도의 사계절이 어려서 겪은 것과 얼마나 달라질까. 가을의 문턱에서 먼저 지구온난화를 떠올리게 되는 감성에 어떤 우수가 깃들까. 이것을 우수라는 단어로 포괄해도 무방할까.

 

가을의 전설

가을 영화 하면 많은 사람이 1995년에 개봉한 <가을의 전설>을 떠올릴 법하다.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을 대표하는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의 모습이 인상 깊다. 보편적 삶과 사랑의 이야기가 캐나다에 접경한 미국 서북쪽 지역 몬태나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몬태나’는 라틴어로 산악지방을 뜻한다.

영화 원제는 <Legends of the Fall>로, 여기서 ‘Fall’이 번역한 것처럼 가을이 아니라 ‘몰락’, 혹은 ‘추락’ 정도의 의미를 지니기에 <가을의 전설>은 대표적인 영화 제목 오역 사례로 거론된다. 동시에 성공한 오역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오역은 한국에서만 일어나지 않았고 적잖은 국가에서 ‘Fall’을 ‘가을’에 해당하는 자국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오역이라고 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영화 <몬태나>(2018년)는 아예 창작 제목이다. 원제는 ‘적대’라는 뜻의 ‘Hostiles’인데, 영화의 주요 무대가 몬태나일 따름이다.

영화 <붉은 10월>의 등장인물인 부장 바실리 보르딘이 미국 망명에 성공하면 정착하고 싶은 곳으로 몬태나를 말한다. 그런 설정이 가능한 것을 보면 그곳에 묘한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땅은 넓고 인구가 적은 몬태나는 말하자면 가장 미국적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본류와 먼 지역이라고 해야겠다. 참고로 그곳엔 가을이 매우 짧고 사실상 겨울이 가을과 동시에 등장한다고 한다. 언젠가 몬태나의 기후가 지금 한반도와 비슷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몬태나의 ‘Fall’은 가을이며 몰락이다.

 

국화 옆에서 

개인의 삶은 그다지 존경스럽지 않은 시인 서정주(1915~2000년)의 대표작 「국화 옆에서」는 그럼에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한국인의 애송시다. 한국인 중에서 외우고 있는 시를 들라고 하면 이 시를 드는 사람이 제법 많을 것이다. 어려서 이 시를 처음 접하고 매혹적이면서 더불어 잘 감각되지 않았던 표현이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였다. 그 앞의 수식어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까지 붙으면 더 아리송하다.

누나가 아닌 그 누님은, 시인의 연배를 감안할 때 몇 살 정도나 되는 어떤 인생역정을 걸은 여자일까. 내게 여자 형제가 없어서 더 와닿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절차탁마를 거쳤겠지만,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왔다면 그 누님이 내 생각에 거울 앞에 서지는 않을 것 같다. 국화가 누님이라면 그는 거울 앞에 서고 시인은 그의 옆에 선다. 누님이 다른 것 옆에 서고 내가 국화 앞에 서는 것은 어떠했을까.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에선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이라 해 중요한 날로 삼았다. 이날에 국화차나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전을 부쳐 먹으며 꽃놀이를 했다고 한다. 9는 양을 뜻하는 홀수 중에서 가장 큰 수로 양기(陽氣)가 가장 강하기에 9가 중첩된 9월 9일엔 양기가 가장 뻗친다고 보았다. 양기가 가장 승한 날과 국화 사이에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중양절의 유래에 관해 다음의 전설이 있다. 중국 동한(東漢) 때 앞날을 잘 맞추는 비장방(費長房)이라는 도인(道人)이 어느 날 학생인 항경(恒景 혹은 桓景)이라는 사람에게 “자네 집은 9월 9일에 큰 난리를 만나게 될 터이니 집으로 돌아가 집사람들과 함께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면 재난을 면할 수 있네”라고 했다. 항경이 시킨 대로 이날 가족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집의 가축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한다. 중양절에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며 높은 산에 올라가는 등고(登高) 풍속은 이 전설에서 비롯했다고도 한다.

9월에 꽃을 피우는 국화로 술을 빚어 중양절에 마시는 풍속이 인제는 사라졌지만, 서정주 시 속의 누님 같은 이와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을 안주 삼아 국화주를 마시는 게 좋은 풍경이 되지 싶다. ‘고’로 끝난 “그립고”의 향이 흠뻑 우러난 국화주이면 좋겠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국화주에 대취하면 좋겠다. ‘상국(賞菊)’하며 시주풍류(詩酒風流)를 한껏 즐기다 보면 초록이 지쳐 우리 인생이 단풍 들겠다. 

 

<메텔. 마츠모토 레이지가 은하철도 999에서 창조한 신비한 여인이 기타큐슈 공항 출국장에서 매혹적인 자태로 또 다른 행성을 향하고 있다. 올 2월 별세한 이곳 코쿠라 출신의 마츠모토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추모전이다>, 2023 - 성일권

은하철도 999의 누님 메텔

마츠모토 레이지의 SF 만화 <은하철도 999>는 일본어로도 「銀河鉄道999(スリーナイン)」라고 쓰고, “긴가테츠도우 쓰리나인”이라고 읽는다. 작중 등장하는 열차의 명칭이기도 하다. 999를 읽는 방법이 우리와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가볍지 않다. 기계인간이 되려는 호시노 테츠로(철이)와 신비로운 여인 메텔이 기계 몸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로 가기 위해 은하철도 999호를 타고 우주 공간을 달리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얼핏 아동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내용이 생각보다 심오해 성인에게 더 적합한 만화다. 원작, TV, 영화 등 다양한 버전이 있어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려내는 세계관과 철학적 전언이 묵직해 이야깃거리가 많다. 

여기서 철이 옆을 지키다가 철이 앞으로 돌아와 철이와 함께 떠나는 메텔을, 앞서 논의한 누님 모델로 제시하면 어떨까 하는 다소 황당한 생각을 떠올린 것으로 넘어가자. 국화 같은 누님, 서정시 시 속의 국화 같은 누님을 닮은 메텔. 나쁘지 않은 듯도 하다. 국화는 성숙한 꽃이다. 

 

입신

바둑의 등급에서 최고위가 9단이다. 한국기원의 단급 제도에서 급은 30급까지, 단은 9단까지 있다. 급은 낮을수록, 단은 높을수록 실력이 뛰어나다. 즉 바둑을 가장 못 두는 사람이 30급이라면 가장 잘 두는 사람은 9단이다. 9단의 별칭이 입신(入神)인 것에서 드러난다.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니 사람의 실력이 아니다. 일본에 십단전이라는 타이틀이 있으나 명인, 국수처럼 일종의 대회이지 정식 단수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1982년 조훈현 기사가 국내 최초로 9단에 올랐고 현재는 100명을 돌파했다. 9단을 받으면 이후 실력이 떨어져도 반납하지 않기에 9단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 한국기원에 소속된 프로기사가 400명대이니, 이런 속도로 9단이 늘어나면 9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농담 삼아 프로 바둑계가 곧 사람 반, 신(神) 반의 세상이 될 것이란 얘기를 한다. 한국에서만 100명에 달하는 기사가 ‘인간’에서 벗어났는데, 이 비(非)인간 중에 가장 특별한 기사를 들라면 인공지능(AI) 기사 알파고다. 알파고는 사람 외의 존재 중에서 유일무이하게 9단증을 받았다. 신이 된 것이니, 사람이 된 것과 뉘앙스가 묘하게 달라진다. 또한 100명이나 되는 신의 하나가 아니라 내용상 유일신의 지위를 차지했다고 봐야 한다.

2016년 3월 9~15일 열린 알파고-이세돌의 5번기 대국의 주인공으로,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AI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에 4 대 1로 승리한 사건은 바둑사에서뿐 아니라 인간 역사에서 중요한 장면이다. 알파고는 4국에서만 이 9단에게 불계패했다. 알파고-이세돌의 대결은 계가로 가지 않고 모두 중간에 불계로 끝났다. 권투로 치면 판정으로 가지 않고 KO로 승부를 갈랐다는 뜻이다.

알파고는 현재 ‘은퇴’해 현역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요즘 왕성하게 활동하는 AI 기사는 카타고다. 카타고는 9단증을 받지는 못했다. 카타고는 최근 미국 아마추어 기사 켈린 펠린에게 15전 14패를 하는 수모를 당했다. 알파고의 통산 전적이 73승 1패로, 이세돌에게 패한 1패가 유일한 패배인 반면 아마추어 기사에게도 대패해 AI 기사의 체면을 구겼다. 인간이 AI의 약점을 집중 공략하기 전에 알파고가 은퇴해서 수모를 면했을 수도 있다. 떠날 때를 아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AI에게도 적용된다고 해야 할까.

9단증을 받은 알파고는 당시 흔히 알사범이나 알구단으로 불렸다. 알파고를 인격체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인간에 대응하는 최초의 비(非)생물 존재를 의인화하는 게 인간 관행에서 자연스럽긴 하다. 그렇다면 성(性)은 무엇일까. 

서양에서 배나 자동차에 종종 여성대명사를 사용하듯 알파고 개발자들은 알파고에게 She, Her 등으로 부르며 여성으로 취급했다. 당시 중계 등에서 He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개발진이 She라고 부르라고 정정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렇다면 카타고 또한 여성으로 봐야 하겠다. 
다만 알파고에게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풍모나, “그립고”를 떠올릴 수 없다. AI와는 국화주를 함께 마시고 같이 취하는 게 불가능하다. 어쩌면 함께 술 마시고 취한 척하는 AI가 등장할 법도 하다만…. 누님 같은 AI, 메텔 같은 AI가 언젠가 가능할 텐데, 어쨌든 알파고는 최초의 여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September는 원래 일곱 번째 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에서 9월은 로마 달력의 아홉 번째 달, 즉 September에서 유래했다. 흥미롭게 septem은 ‘일곱’이란 뜻이다. 9월이란 서양 어휘에 담긴 의미가 왜 7일까.

서양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해 기원전 45년에 시행한 율리우스력 때문이다. 율리우스력 도입 이전의 옛 로마 역법에서는 새해가 3월에 시작하기에 September는 연도의 일곱 번째 달이었다. 카이사르의 새 역법 시행으로 새해가 두 달 앞당겨질 때 September 또한 두 달 앞당겨졌으면 이런 곤란이 안 생겼겠지만, 현대인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사태가 카이사르의 생일이 7월에 들었다는 데서 발생했다. 

카이사르의 생일이 있는 달인 7월이 Július(July)가 되고, 로마 제정의 시원이 되는 옥타비아누스가 8월을 자신(Augustus)을 따서 명명(August)하며 두 개 달이 권력자의 이름으로 채워진다. 이런 연유로 원래 7월이어야 September는 9월이 됐다. 이후 연쇄적으로 10월 Octobris, 11월 Novembris, 12월 Decembris가 된다. 8, 9, 10이 10, 11, 12로 2씩 더해져 월의 명칭이 된 배경이다. 역법에 심각한 만행을 가한 셈이지만, 그들 개인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알든 모르든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세계인이 모두 기념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의 역법은 1582년 10월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개정하며 도입됐기에, 그레고리력이라고 한다. 동방 정교회는 일상 활동에서는 국가에서 정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나, 예배와 예전을 명시한 교회력에서는 보편교회 시절부터 사용한 율리우스력을 따른다. 동로마 교회와 서로마교회가 서로 대립하고 갈등했기에 동로마교회는 서로마교회 교황의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방 정교회의 성탄절은 율리우스력 12월 25일로, 그레고리력으로는 1월 7일이다. 따라서 동방 정교회의 성탄절은 우리 기준으로 1월 7일이다.

 

졸수(卒壽)

나이와 관련한 단어가 많지만 90세를 뜻하는 졸수(卒壽)는 긍정적 가치가 담긴 단어다. 그 뜻이 ‘완성된 생’이란 의미여서 90세를 살아온 인생에 큰 존경을 포함했다고 해석된다. 자주 쓰는 말이 아니지만, 인정할 만한 삶을 표시할 때 적절하게 쓰면 좋겠다. 그렇다고 90세까지 살았다고 무조건 졸수라고 갖다 붙일 수 있는 건 아니다. 90세 노인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모든 90세 노인이 졸수에 이르지는 않는다.

90세까지 산 것만으로 어느 정도 존중은 받아야 하겠지만, 그런 취지라면 자신의 부모 정도에나 적당히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1933년생인 나의 어머니에게 나는 졸수라는 용어를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망구(望九)라는 말은 90세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81세를 일컫는다. 인생 70세를 예로부터 드물다고 했고 90세에 대해선 더 큰 의의를 부여한 반면, 80세에는 다소 시큰둥하다. 70세나 80세나 드문 것은 매한가지이고, 80세를 넘기면서 90세를 제대로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망구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받아들여도 좋겠다. 70세에 대해선 드물다는 빈도만을 강조했지만, 90세에 대해서는 완성이란 가치를 부여했다는 게 차이다. 80세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는 스피노자의 유명한 경구는 노년을 구획지을 때도 유효하다. 

 

아홉 번 하기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에 나무 아홉 짐하고 밥 아홉 번 먹기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다. 

우리 선조들은 정월 대보름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아홉 번 해야 좋다고 받아들였다. 나물을 아홉 바구니 하거나, 삼을 아홉 바구니 하기도 한다. 심지어 책을 아홉 번 읽기도 하고, 매를 아홉 번 맞기도 하는데, 이렇듯 무슨 일이든 아홉 번을 하면 한 해 동안 기운을 내서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9가 지닌 상징적 의미가 완성, 성취, 달성, 처음과 끝, 전체를 의미하고, 천계와 천사의 숫자이며, 불후의 숫자이기에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에도 반영된 모양이다. 죽염을 만들 때 대나무 통속에 천일염을 넣고 소나무 장작불로 9번 구워서 만든 것이 같은 이유이겠다. 모든 죽염을 그렇게 만들지는 않고 좋은 죽염의 제법이 그렇다.

하늘의 가장 높은 곳을 구중천(九重天)이라고 하거나 불교나 도가에서 천계를 9로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고시를 9수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꿈보다 해몽 격이지만, 일단 대통령이 되는 데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기여한 것 같기는 하다. 좋은 대통령이 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할지가 걱정이다. 죽염을 만들기 위해 9번 굽는 것과 9수는 달라도 많이 다르니 드는 생각이다.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문학·정치·영화·춤·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으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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