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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위키(Wiki)의 가치
훼손된 위키(Wiki)의 가치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3.10.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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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광고가 전혀 없는 위키피디아와 위키리크스의 홈페이지

공동체 지향성이 담긴 ‘위키(Wiki)’라는 접두어가, 한국에서는 기이하고, 저속하고, 선정적이고, 비틀며 인신공격하는 인터넷 언론사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해온 브리태니커, 브로크하우스, 체임버스, 라루스 등 제도권 백과사전들의 권위주의적인 규정 짓기에 반발해 시민들이 함께 집단지성을 발휘해 만든 참여적 백과사전이 위키피디아(Wikipedia)이고, 권력과 자본의 야합, 빅브라더형 독재 권력 등에 맞선 시민들이 저항과 고발로 이루어진 인터넷이 위키리크스(WikiLeaks)다.

이 사실을 떠올린다면, 김행이 소유한 위키트리의 운영방식은 고약하기 짝이 없다. 팔로워가 635만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같은 SNS에 자주 출몰하는 위키트리는 저속함과 비열함, 선정성, 사실 왜곡 등의 공동체 파괴적인 글로 도배돼 있다. 전혀 위키적이지 않은데, 위키라는 접두사를 쓴 것은 위키피디아와 위키리크스의 인기에 무임승차하려는 의도였을 터다.

인터넷 매체를 주식 100억 대의 회사로 키운 것은 놀라운 경영능력이다. 이와 관련, 10월 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인터넷 매체 위키트리의) 혐오 장사로 주식을 79배 급등시켜 100억대 주식 재벌이 됐다. (선정적 제목의 위키트리 기사들을 언급하며) 황색언론으로 만드는데 혁혁하게 기여했다”고 추궁하자 김 후보자는 이렇게 답했다.

“저도 부끄럽다. 이게 현재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기도 하다. (언론중재위원회) 지적사항이 나온 시기를 연도별로 보면, 저희보다 훨씬 큰 언론사, 메이저 언론사 1~3위가 다 들어갔다.”
그는 선정적 표현, 성폭력 2차 가해, 혐오 표현은 다른 언론사들도 다 마찬가지인데 왜 위키트리만 갖고 그러냐, 특히 큰 언론사는 더 심한 것 아니냐며 화살을 ‘큰 언론사’로 돌렸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5일 언론중재위원회가 주최한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 운용의 성과 및 개선과제’ 토론회의 자료를 보면 김 후보자의 위키트리는 2019~2021년 3년간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시정권고를 ‘가장 많이 받은 언론사’들 중 2~3위에 올라있다.

 

디지털 시대의 보편적 용어로 등장한 ‘위키’란, 사용자들이 웹 페이지 개발이나 프로그래밍 기술에 대한 고급 지식이 없어도 문서의 내용과 그림 등을 입력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웹사이트를 일컫는다. 즉, 불특정 다수가 공동으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 위키 정신의 원조 격인 위키피디아는 비영리 단체 위키미디어 재단을 설립한 지미 웨일스가 2001년 영어판을 출범시킨 뒤, 현재는 한국어판(2002)을 비롯해 전 세계 200여 개 언어로 제공된다.(1)

위키피디아의 한국어 버전이 인기를 끌면서, 2015년 또 다른 한국어 위키사전이 등장했다. 파라과이 소재의 나무위키(Namuwiki)는 위키피디아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나 두터운 마니아층이 앞 다퉈 글을 쓰면서 한국어 위키사전 중 2위 규모에 올라있다. 위키사전의 이점은 이른바 불특정 다수가 집단지성을 발휘해 사전을 더 넓고 깊이 있게 다듬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악의적인 편집과 부정확한 내용, 내용의 질, 책임성과 권위의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수정 수월성 및 접근성에 힘입어 네티즌들에게 가장 많이 애용되고 있다.

공동체 지향적인 위키의 정신은 2006년 개설된 위키리크스(WikiLeaks)를 통해 더욱 발전됐다.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또는 자체적으로 수집한 사적 정보 또는 비밀, 미공개 정보를 공개하는 국제적인 비영리기관으로 시작된 위키리크스는 개설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120만여 건의 문서를 등록했고, 2010년 4월에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파일을 공개함으로써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게 됐다. 이 비디오는 2007년에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민과 기자들이 미군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을 담았다.

2010년 6월에는 미국 정부에 의해 기록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7만 6,900건의 미공개 문서들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일지(Afghan War Diary)’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 2010년 10월에는 주요 영리 미디어 업체들과 협력해 일명 ‘미국의 이라크 전쟁 기록(Iraq War Logs)’으로 불리는 약 40만 건의 문서들을 공개했는데, 이 기록에는 이라크와 이란 국경에서 숨진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2010년 11월에는 미 국무부 외교전신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에서는 조직의 설립자들을 중국의 반체제 인사와 기자, 수학자, 그리고 미국, 중국, 유럽, 오스트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활동하는 벤처기업 기술자들로 밝히고 있지만, 호주 출신의 대표 줄리언 어산지 외에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평가는 찬사와 비난, 둘로 엇갈리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2008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로부터 뉴미디어상을, 2009년 국제앰네스티로부터 영국 미디어상(UK Media Award)을 받았다. 2010년, 시사주간지 <더 타임스>는 ‘올해의 인물’로 위키리크스 대표 줄리안 어산지를 선정했다. 위키리크스 대표 줄리언 어산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집단지성으로 만들어지는 위키백과에서 착안해 위키리크스를 시작했으며, 주로 익명 제보에 의존하지만 자체적인 검증 시스템을 통과한 정보만을 사이트에 올린다고 설명했다.(2)

미국의 수배를 받던 어산지는 2012년부터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도피 생활을 하다 2019년 에콰도르 정부에 의해 추방됐고 영국 경찰에 체포돼 벨마시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미 법무부는 2019년 방첩법 위반 등 18개 혐의로 어산지를 기소하고 영국에 송환 요청을 했으며 현재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20일, 호주 여야 의원들이 미국을 찾아 영국에서 수감 중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석방을 촉구했으나, 미국은 묵묵부답이다.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위키리크스는 이용자가 수백만 명에 달해도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의도와 목적으로 운영된다. 

국회 청문회에서 ‘김행랑’이라는 딱지를 받은 김행이 어떤 의도에서 위키라는 접두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위키트리의 이용자들 중 상당수가 위키의 정신을 떠올렸을 것 같다. 위키트리는 2010년 서비스 개시 초기에는 소셜 뉴스의 개방 및 협업형 인터넷 뉴스를 기본정신으로 삼아 로그인을 하면 누구나 기사를 수정, 작성, 편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운영 시스템이 일반 언론사처럼 완전히 바뀐 뒤 위키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 사이트의 어디에도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의 탈(脫)상업적이며 탈(脫)권위주의적인 기사 배치가 눈에 띄지 않으며, 권력과 자본의 야합에 맞선 위키리크스적인 고발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소유자 김행의 파문 이후에도 위키트리의 사이트에는 국회청문회에서 지적한 대로 명예훼손적이고, 선정적이며, 반윤리적인 글로 넘쳐나고 있다. 나는 그를 기억한다. 나 같은 볼펜 기자들이 손바닥만한 취재 수첩을 들고 맨땅을 헤집고 다닐 때, J일보의 여론조사 기자로서 특채된 그는 당시 우리로선 생소한 여론조사 기법으로 그래픽 지면을 화려하게 선보이며 언론의 질적 수준(?)을 드높였던 사실을… 여론조사 기사를 통해 정치권에 영향을 미쳤고, 그런 탁월한 여론전문가의 실력을 통해 그의 말마따나 국민통합21에서 정몽준 후보의 대변인을 거쳐 박근혜 청와대에서 대변인도 했고, 국민의 힘 비대위원과 공천관리위원도 했으며, 여하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도 올랐을 것이다.

야권과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그가 수사의 대상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위키의 접두어를 사용하는 언론사주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뒤늦게라도 위키의 정신을 발휘해 인생 3막의 커튼을 올려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부디, 언론계 사주로 복귀하면 공동체적인 위키의 정신대로 이미 죽은 권력 말고, 자신이 너무 잘 아는 살아있는 권력의 민낯을 까발려주길 바란다. 권력과 자본의 달콤함에 취한 그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Mathieu O’neil 마티외 오닐, ‘Wikipédia ou la fin de l’expertise? 위키피디아, 전문 능력의 종말인가? 집단지성의 결실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9년 4월. 

(2) 성일권, ‘공론장으로서의 위키리크스의 지위와 그 과제-미디어적 기능과 역할을 중심으로(WikiLeaks’s status and its mission, as a media public sphere)’, 정치·정보연구 v.15, no.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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