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 미중 패권 갈등 속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미국 편에 가담하면서 경제난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수출로 먹고사는 통상국가인데도 가장 수출 의존도가 큰 중국과 불화를 택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중국과 쓸데없이 각을 세우면서 반도체 등의 수출이 급감하는 것을 보면 일리 있는 분석이다.
하지만 윤 정권 들어 심화하고 있는 경제난이 중국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 요소는 그동안 쭉 진행돼왔던 한국 경제의 취약성에, 또 하나의 무거운 돌을 얹어 놓은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월요일의 꿈, 최배근 지음, 2024년 2월)는 한국 경제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를 파헤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경제사학자인 최배근 건국대 교수가 통계자료 등 풍부한 데이터와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활력을 잃고 ‘고인 물 사회’로 전락한 한국 경제를 명쾌하게 진단했다.
최 교수는 한국 경제를 일본과 미국과 비교한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 20년, 30년이 된 것은 산업 혁신을 하지 못하고 미래를 위한 먹거리를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지금 한국이 그와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보장 재정이 궁핍화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도 비슷하다.
다음은 최 교수의 말이다.
“이상의 일본 이야기가 현재의 대한민국 모습과 매우 흡사하지 않은가? 한국 사회와 경제야말로 제조업 성장은 정체하는 가운데 미래 먹거리는 보이지 않고, 부동산은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부동산 자산에 기반한 세습 사회는 강화되고 있고,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임금노동자-자영업자의 소득은 그 격차가 구조화된 지 오래됐다. 그 연장선에서 AI 영역으로 넘어간 교육은, 정해진 답을 빨리 그리고 많이 습득하는 산업화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에게 결혼은 사치로 취급되고 자기 삶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출산 파업’을 하는 등 일본 사회와 경제보다 나은 점을 찾기 어렵다.”(17~18쪽)
그나마 일본은 65살 이상의 노년층 비중이 3분의 1에 가깝지만 한국은 아직 20%가 되지 않고 정치에서는 세습이 없다는 것이 일본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과 비교할 때는 어떤가? 최 교수의 말에 따르면, 경제 규모가 크고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 중 사회적 병리 현상이 극심한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과 미국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부가 부동산 자산 중심인데 미국은 금융자산 중심이라는 점, 미국은 힘을 활용해 만만한 나라들에게 자기 비용을 전가하며 자국 이익을 추구하지만 한국은 비용을 떠안는 나라라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미국보다 더욱 사회적 병리 현상이 심할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으로 화폐 권력(금융)의 왜곡을 꼽는다. 금세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소득과 자산의 비대칭성이다. 한 예로 문재인 정권(2017~2021년)에서 한국의 전체 소득이랄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은 235조 9천598억 원이 늘었는데 순자산은 무려 5천494조 7천427억 원이 증가했다. 부동산 자산 증가만 보면 격차가 더욱 심하다.
최 교수는 소득과 자산의 비대칭이 문재인 정권 때만 아니고 김대중 정권 이후 정권의 성향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강화됐다고 말한다.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역설적으로 시장의 독주가 강화되면서 한국 사회가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 즉 부동산 자산 중심의 ‘고인 물 사회’가 고착화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윤석열 정권처럼 재벌과 부자를 대놓고 지원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부동산을 중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강화되면서, 힘없는 약자는 시장이라는 정글에 강자의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재정 준칙 제정, 재정 건전성, 재정 지출 최소주의가 모두 돈의 흐름을 강자와 부자에 유리하게 하는 조치이고, 이런 일을 ‘모피아’라고 불리는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주도하고 있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이 책 2부(대한민국에서 돈의 배분)의 ‘자본의 하수인, 모피아’라는 글에 모피아가 어떤 악행을 했고 하고 있는지 잘 나온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공공영역에서 가장 권한이 집중된 곳은 공적 물리력의 집행기구인 검찰과 공공자금의 배분을 결정하는 기재부”라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 ‘불평등과 양극화’의 대명사, 인구 소멸 제1순위 국가, ‘모피아’ 공화국. 이런 표현에 최 교수가 보는 한국 경제의 부정적인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러면 이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최 교수는 경제를 말하면서 시종 정치의 역할을 강조한다. 경제의 왜곡을 정치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구체적으로는 사회소득과 사회금융의 회복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금 사회에 유통되는 불환화폐(신용화폐)라는 중앙은행권의 신용을 뒷받침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사회 전체 구성원의 소득이고 세금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이 정부에 기본 생활에 필요한 사회소득과 사회금융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이 의무이자 권리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와 시장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두 축 사이의 균형이 깨진다는 것은 정치의 과잉이거나 시장의 과잉을 말한다.”(219쪽)
“사회를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양 축인 정치와 경제가 제자리를 잡게 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사회 몫과 개인 몫의 배분에서 균형을 만드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실종된 이유는 사회 몫의 배분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사회 몫 배분은 정치의 영역이고, 민주주의 수준을 반영한다.”(221쪽)
이 문장을 보면, 경제학자인 그가 왜 그토록 정치의 중요성을 되풀이 강조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오태규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관훈클럽 총무, 한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위원장, 오사카 총영사를 역임했다. 2021년 9월부터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국제, 외교, 국내정치, 사회, 스포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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