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청년들은 왜 분노할 힘을 잃었는가?
청년들은 왜 분노할 힘을 잃었는가?
  • 김태형 l 심리학자
  • 승인 2023.12.29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정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할 것들

일부 기성세대들은 오늘날의 청년들을 공동체나 정의에 무관심한, 이기적이고 비겁한 세대라고 비판한다. 조국 전 장관 사건에 대해서는 상당한 분노를 표출한 반면, 곽상도 아들의 50억 원 퇴직금 건에는 침묵했던 것 등을 거론하며 청년들이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부조리나 거악에는 분노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자잘한 문제에만 분노한다고 개탄한다. 그리고는 “내가 젊었을 때는 저렇지 않았다”라는, 다소 꼰대스러운 자랑을 덧붙이기도 한다. 청년들은 왜 분노하지 않는(못하는) 것일까? 

 

고립을 강요당한 청년들의 삶

그 가장 큰 원인은 청년들이 고립된 삶을 강요당했다는 것에 있다. 기성세대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공동체 속에서 생활해왔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소중함을 경험했다. 그들은 어렸을 때는 또래들과의 놀이 공동체, 청소년기에는 학교 공동체, 성인기부터는 마을 공동체(1)나 직장 공동체 속에서 생활했다. 물론 기성세대도 90년대 이후부터는 개인적 고립을 강요당했지만, 적어도 이들에게는 공동체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나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사회나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있으며 필자가 『한국인의 마음속엔 우리가 있다』(2)라는 저서에서 강조한 ‘우리주의 심리’가 강한 편이다. 

반면에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공동체 생활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들은 어렸을 때에는 놀이 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했고, 청소년기에는 학교 공동체는 고사하고 왕따를 경험 또는 목격한 경우가 많았으며, 성인이 돼서는 치열한 개인 간 경쟁이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세상에 내던져졌다. 건강한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이 거의 없는 청년들은 공동체(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미약한 반면, 개인주의 심리는 강한 편이다.

개인적 고립 속에서 성장했고, 성장 후에도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은 외로움이나 고독은 물론이고 지독한 무력감을 떨쳐낼 수 없다. 인간이 위대하고 강한 것, 즉 인간이 세상을 변혁할 힘은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일 때 생긴다. 즉 인간의 힘이란 곧 ‘우리’, ‘공동체’의 힘인 것이다. 우리라는 집단이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홀로 고립돼 살아가는 개인은 겁이 많고 나약하며 무력할 수밖에 없다. 고립된 개인은 거악이나 사회에 맞서 싸우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으며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믿지도 못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각자도생의 길에서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는 것, 나아가 출세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개인주의 심리나 심한 무력감에 지배당하며 살아왔고, 현재에도 개인으로 고립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음에도, 세상을 향해 분노하지 못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의 분노는 거악이나 사회가 아니라, 힘없고 약한 대상 혹은 자신에게 상처나 고통을 줬던 개별적 타인을 향한다.

 

청년들이야말로 정의를 갈망한다

필자는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남긴 가장 심각한 악영향 혹은 후유증이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한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승자독식의 규칙에 기초한 개인 간 경쟁을 찬양하는 신자유주의는 한국인들을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같은 잔인한 개인 간 서열경쟁, 격투기 시합으로 밀어붙였다. 그리하여 개인 간 갈등과 불화가 심화되고, 불평등이 만연했다. 결과적으로 인간관계가 크게 악화되고 모든 공동체가 붕괴된 것이다. 국내 기성세대는 성인이 된 후에 신자유주의를 경험했지만,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신자유주의의 습격을 받으며 성장했다. 한마디로, 어릴수록 신자유주의로부터 입은 피해가 더 큰 것이다.

공동체나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못해 이기적이며, 무력감으로 인해 사회구조적 모순이나 거악에 분노하거나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 기성세대가 지적하고 비판하는 이런 청년들의 특성이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청년들이 정의나 사회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청년들이야말로 정의가 실현되기를, 세상이 바뀌기를 가장 간절히 바라는 세대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청년들 중 대다수는 가진 것이 없다. 상당 부분 기득권화됐고 일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가진 것이 없는 청년들은 지독한 고립적 생존 불안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청년들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는 행복할 수 없고, 앞으로 행복해질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해마다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낮은 출산율은 자신들에게 불행을 강요하고 미래를 박탈하는 병든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소극적, 의식적 반항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은 세상이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단지 그런 것이 가능할 거라는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 문제나 정의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매도당해왔던 청년들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정의로운 등장인물들에게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소감을 물어보면, 대부분의 청년들은 거악에 맞서 목숨까지 바쳐가며 정의를 지키려고 했던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큰 감명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청년들의 이런 반응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정의에 대한 열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청년들이 분노해야 할 때 

최소한의 사회적 생존조차 버겁고 인간관계에서의 상처로 인해 자기 마음을 돌보기에 급급해 결혼이나 출산, 즉 미래를 포기하고 있는 청년들이 그들에게 강요된 비참한 운명을 바꾸려면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그러려면,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첫째, 자신에게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고 있는 주범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아마 영화 <서울의 봄>을 본 청년들 중에서 일부는 오늘날의 한국이 ‘헬조선’이 된 것이 악당들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분노의 화살을 자신이나 이웃이 아닌 적폐세력이나 병든 사회 쪽으로 돌리게 됐을 것이다. 청년들은 취업 준비에만 매몰되지 말고 사회 문제를 파고듦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각자도생의 방식으로는 청년들이 불행한 처지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둘째, 연대와 단결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청년들이 거악에 분노하거나 저항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이 개인으로 파편화되고 고립돼 있어서 무력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청년들이 고립된 개인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해 서로 연대하며 하나로 뭉치려면 그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공동의 목표, 즉 사회정치적 개혁과제가 있어야 한다. ‘우리’라는 집단이 형성, 발전하려면 반드시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청년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모든 사회 운동과 개혁에는 선각자가 있다. 먼저 깨달은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선각자 역할을 함으로써 청년 세대를 정치세력화해야 한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면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돼야 개척이 가능하듯, 진정한 사회 개혁 역시 피가 끓는 청년들이 주도자가 될 때 가능하다. 기성세대, 특히 기성 정치인들은 청년들을 곧잘 비판하면서도 청년 세대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의존하거나 그들에게 청원하는 방식으로는 청년들이 자신의 요구를 실현할 수 없다. 청년들이 하나로 뭉쳐 정치세력으로 등장해야 기성세대, 기성 정치권은 비로소 청년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진정 사랑해야 하는 것은

상당수의 한국 청년들은 ‘진짜 사랑’ 결핍 상태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진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성장과정에서도 진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로부터 그들은 인간을 믿지도, 사랑하지도 못하게 됐다. 인간을 사랑할 수 없으니 인간인 자기 자신도, 자기 자식도 사랑할 수 없다. 이웃이나 인류를 사랑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필자가 최근 저서인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3)에서 강조했던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의 무능력자가 된 것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없게 된 상당수의 청년들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재물이나 지위 등에 집착하는 ‘가짜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때에만 정신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으며, 사회 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청년들은 자기 자신부터 전적으로 수용하고 사랑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사랑의 능력을 회복하고 높여나가야 한다. 그것에 기초해 또 다른 인간들인 이웃과 사회, 인류를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김태형
심리학자.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2005년부터 활발한 연구, 집필, 교육, 강의, 상담 활동 등을 통해 심리학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소개해왔으며, 심리학을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학문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1) 마을공동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로 <응답하라, 1988>을 꼽을 수 있다.
(2) 김태형, 『한국인의 마음속엔 우리가 있다』(부제: 심리, 역사, 문화로 한국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온더페이지, 2023년 06월.
(3) 김태형,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부제: 진짜 사랑을 잊은 한국 사회, 더 나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갈매나무, 2023년 12월.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